23년 2월 18일… 7년의 시계를 앞으로 돌리면 16년 2월이 되네요. 참.. 그 때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준이 금리 인상을 단행했던 시기죠. 15년 9월 얘기부터 시작하죠. 15년 9월 18일이었을 겁니다. 당시 9월 FOMC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요… 15년 3월 금리 인상을 준비하던 연준은 한 템포 쉬어가자 분위기였죠. 그리고 15년 6월이나 9월 중에는 금리 인상이 유력해보였습니다. 인플레 가능성이 높아지면 언제나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단행해서 인플레이션의 예봉을 꺾었던 연준이었기에… 인플레 기운이 강해지면서 미국의 성장도 양호해지던 2015년 하반기는 금리 인상의 적기라고 할 수 있었죠.
문제는 15년 8월 11일이었죠. 당시 중국의 위안화 기습 절하에 이은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시장 위기론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6월 금리 인상을 못했던 연준은 9월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죠. 중국이 흔들리고 있으니.. 그리고 이로 인해 뉴욕 증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연준이라면 금리 인상에다가 양적완화에다가.. 난리가 나겠죠. 당시 소비자물가지수는 간신히 2%를 넘는 수준이었으니.. 돈 풀어야죠. 그런데요.. 당시 연준에 대한 시장의 인식은 그런 게 아니었죠. 아주 엄격한 인플레이션 파이터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점쳤습니다. 당시 금리 인상 쉽지 않다는 주장을 해도 연준이 왜 중국을 걱정하면서 금리 인상을 미루겠느냐는 빈축을 사곤했던 때였답니다. 그래서 상당히 힘들었죠. 그리고 그 해 9월 금리 인상은 미루어졌구요… 12월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더랍니다.
12월 FOMC 직후 그 유명한 점도표가 나오는데요… 이 때 정말 눈이 튀어나왔죠. 16년 1년 간 4차례 금리 인상, 17년에 4차례, 그리고 18년에도 3~4차례 인상하고 이후 3.75%정도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장기 플랜이 나와줬던 겁니다. 미국 금리가 3.75%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3.75%보다 높은 4%이상의 금리를 봐야하는 것 아닐까요. 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주식 무너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시 메롱 분위기였던 부동산이 다시 한 번 골로 가면서 장기 침체에 들어간다는… 가계 부채 위기론이 다시 한 번 유행을 하던 시기였던 게 생생히 기억나네요.
그리고 이 점도표에 깊은 감흥을 받은 시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특히 중국과 이머징 시장은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리기 시작했죠. 그러자 연준 내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더랍니다.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은 미국 인플레이션 제압도 중요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성장 부진이 미국 경제에 부메랑처럼 영향을 주는 스필 오버 효과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연내 4차례 금리 인상을 예상했던 채권 시장에서는 1~2차례 정도 금리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장기 금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금리가 하락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실제 금리 인상은 16년 12월에 한 차례 단행되는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그리고 19년 하반기 금리 인하에 돌입했고, 20년에 코로나 사태를 만나면서 연준은 돈 풀기 머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른 바 연준 호구론을 입증했죠. 당시 연준의 이미지가 선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제압하는 매우 엄한 이미지였다면.. 지금의 연준은 뭐랄까 조금만 성장이 둔화될 듯 하면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서 선제적으로 디플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오버를 하는 쫄보(?) 정도로 보여집니다. 7년이라는 시간의 터울을 넘어 시장 참여자들의 연준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크게 바뀌어 온 겁니다.
당시에 달러 루프라는 말이 유행했죠. 강달러 부담이 너무나 컸는데요… 달러가 강세가 되면 이머징 시장의 부채 부담을 늘리게 되고, 국제 유가 하락 및 미국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를 잡아내리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곤 합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금융 위기 이후 경기 둔화 때문에 연준은 금리를 낮게 유지하죠. 금리가 낮아지자 달러가 약세를 보입니다. 에너지 가격 오르고 수입 물가도 오르죠. 그리고 이머징 시장도 회복되고 미국도 완만하게 디플레 영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인플레 목표인 2% 언저리에 다가서자 시장은 긴장하게 되죠. 연준은 2%가 되기 전에 미리 나서서 선!제!적!으로 인플레를 제압해왔기 때문이죠. 시장은 약간의 회복, 혹은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보면 지레 연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를 높이기 시작했죠. 그럼 금리를 인상하지도 않았는데 시장 금리는 오르고 달러는 강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강해진 달러로 인해 이머징 시장은 흔들리고 미국 성장 둔화 우려도 커지면서 자산 시장이 흔들렸죠. 그리고 강달러로 에너지 가격이 흘러내립니다. 수입 물가도 하락 압력을 받으니 다시금 디플레 우려가 커집니다. 이에 연준이 금리 인상을 포기하게 되면 다시 달러 약세 & 인플레 징후 확산 & 이머징 한숨 쉬고 회복… 그러다가 물가 조금만 오르면 금리 인상 우려 확대… 달러 강세.. 그로 인해 불안감 확대.. 디플레 우려 확산… 그러다가 다시 연준 금리 인상 포기… 달러 약세.. 더 하면 짜증내실 듯 합니다. 이게 당시의 달러 루프였죠.
당시 달러 루프의 핵심은요.. 연준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그 중심에 있었죠. 이 정도면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인플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연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았음에도 달러 강세를 만들어서 시장을 짓눌러버리는 현상이 나타났던 겁니다. 그러니…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아도.. 하려는 듯한 모습만 보여도 시장이 눈물 흘리고 난리를 부려서.. 어쩔 수 없이 금리 인상을 포기하고.. 다시 하려하고… 포기하고.. 다시 하려하고를 반복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런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 연준이 얘기를 하죠. 우리 옛날처럼 그런 무서운 사람들 아니예요… 적극적으로 돈 풀겠다는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세요.. 라구요… 고압 경제, 대칭적 물가목표, 평균물가목표제 등을 발표하면서 달래주고… 실제 코로나 때나 19년 무역 전쟁 당시에 보험적 금리 인하 등을 단행하면서 바뀌어버린 연준의 진심을 시장이 알아주기를 기도했죠. 그리고 이런 연준의 변화로 인해 선제적으로 인플레 제압을 위한 금리 인상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시장이 회복에 나서며 당시의 달러 루프…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죠.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루프를 만나고 있죠. BofA의 마이클 하트넷이 말했던 3가지 쇼크가 하나의 루프가 되어 빙빙 돌고 있습니다. 우선 인플레이션 쇼크죠. 물가가 올라오면서 주가는 상승세를 멈추고 주춤해지고 금리는 뛰기 시작합니다. 달러는 약세에서 벗어나 강세 전환하죠. 인플레가 강해지면 연준이 단호하게 금리를 인상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그럼 금리 인상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는 Rate 쇼크.. 즉 금리 쇼크가 나타납니다. 주가는 큰 폭 하락하고 금리는 더욱 강한 상승세를 보이죠. 미국 금리가 빠르게 오르자 달러는 큰 폭 강세를 시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라버린 금리와 물가.. 그리고 달러 강세로 인해 미국 경제도 짓눌리게 되면서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죠. 이는 이른 바 경기 침체 쇼크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난 해 6월, 그리고 지난 해 11~12월에 경기 침체 쇼크가 보다 크게 부각되었던 바 있죠.
그런데요.. 침체 쇼크 우려가 커지게 되니까요… 시장에서는 연준이 이제 돈 풀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준은 과거의 그 연준이 아니죠. 디플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곳이죠. 경기 침체가 찾아오면 디플레가 두려울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돈을 풀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연준이 돈을 풀 때마다 자산 가격은 항상 바닥을 치고 강하게 뛰어올랐던 바 있죠. 지난 7년 간 연준 피벗론을 믿고 겁내지 않고 기다린 투자자에게 복이 있었기에.. 금리가 낮아지고 달러도 약해지기 시작하자 자산 시장으로 돈이 몰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자산 가격이 오르고… 풀려있는 저축과 탄탄한 고용의 지원을 받아 성장 둔화 우려가 상당 수준 사라지게 되죠. 경기 침체가 생각보다 약하다 혹은 경기 침체 가능성 낮아졌다… 등의 얘기가 나왔던 것이 지난 해 7~8월 자산 가격 반등 당시였구요… 올해 1월의 인상 깊은 주가 상승을 반영하면서 No Landing시나리오가 나온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리 낮아져버린 달러와 금리가.. 여전히 불씨를 갖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재차 강하게 만들죠. 그리고 인플레가 다시 올라오면서 인플레이션 쇼크에 다시 진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리의 급등을 만들게 되고.. 다시 경기 침체 우려를 높이게 되죠. 그리고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 피벗 기대가 커지면서 자산 가격이 살아나면서 노랜딩, 혹은 완만한 경기 침체 기대가 커지고… 이게 인플레 우려를 키우고.. 금리 우려를 키우고… 다시 경기 침체 우려를 키우고… 네.. 15~16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순환 고리, 즉 루프가 나타나고 있죠.
이런 새로운 루프가 나타나는 핵심… 연준에 대한 인식에 기인합니다. 어떤 인식일까요… 인플레 따위는 신경쓰지 않죠. 신경쓰는 척 하지만 디플레 우려가 커질 것 같다면 만사 제쳐두고 선제적인 돈 풀기에 들어가는 연준에 대한 인식… 이게 존재하기 때문에… 경기 침체 쇼크에서 바로 자산 시장을 중심으로 한 강한 회복으로 되돌려지게 되는 거죠. 지난 해 7~8월 25% 뛰어올랐던 나스닥 시장과… 지난 1월 모든 자산의 랠리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6년 2월에는 연준이 선제적으로 인플레이션 대응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리고 23년 2월에는 연준이 선제적으로 디플레 대응을 위해 돈 풀기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장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반대 성격의 순환 고리를 돌리고 있는 거죠. 이번의 루프 역시 풀려나가려면 연준에 대한 시장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시장은 빠르게 내려오는 인플레이션을 보면서 이제 인플레이션은 끝났다.. 되려 조금 지나면 디플레를 걱정하게 될 게다.. 라고 기대하고 있죠. 그러나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확연히 꺾여내려올 때까지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인플레가 재발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죠.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착화되는 디스토피아가 현실화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연준 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중앙은행이 고민하는 부분이죠.
2021년 3월부터 소비자물가지수는 연준의 목표치인 2%를 넘었죠. 다음 달이면 2년을 꽉 채우게 됩니다. 인플레이션 고착화가 언제부터 확연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직은 임금-물가 악순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연준이 얘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직은 고질병이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죠. 높은 수준의 인플레를 머금고 더욱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고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그럼 70년대처럼 강한 인플레이션 괴물의 출현과 함께 이를 제압하기 위한 고된 고금리 처방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죠. 연준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빠르게 가자니 금융안정 이슈가 불거질 수 있죠. 천천히 가더라도 인플레이션 재발은 없게… 그렇게 꿋꿋이 밀고 가는 게 어쩌면 가장 빠른 인플레 제압의 첩경 아닐까요. Higher for Longer라는 단어는 선제적으로 디플레에 대응하면서 돈 풀어주지 못해 안달하던 그 때의 연준이 더 이상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말 에세이 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