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질문을 받았죠. 미국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2011년의 내음이 나는 게 걱정이 되고… 협상 타결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실물 경기에, 그리고 시장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답을 했는데요.. 후속 질문에 조금 더 놀랬습니다. 부채 한도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을 때 연준이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을 포기하면서 금리 인하 및 양적 완화로 전환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죠.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한 시각보다도… 이 질문의 의도가… 실제 부채 한도 문제보다는 연준이 언제 피벗으로 돌아서는지가 가장 큰 관심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피벗 전환을 하게 되면서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려주게 되면 다시금 자산 가격이 크게 상승하게 될 테니.. 그럼 새로운 투자 기회가 생겨나는 거겠죠. 네.. 미국 부채 한도 상한 문제로 인해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는 것은 대형 호재(?)가 되는 조금 이상한 구도가 나타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너무 추운 날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죠.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겠다.. 혹은 열대 지방에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요, 막상 여름이 되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게 되죠. 그 압도적인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 그런 생각을 왜 했을까.. 하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네, 여름을 우습게 보는 거죠. 더욱 유치한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혼나고 방에 들어와서 식식 거리다가 집을 나가면 마음 아파하시겠지.. 라는 정말 유치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꼬마 아이는 모르는 거죠. 집 나가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왜 이런 재미없는 얘기를 해드리냐면요.. 어쩌면 시장은 경기 침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해 말 크레딧 스위스의 파산 위험이 불거졌을 때 나스닥이 하루에 3%씩 오르면서 환호했던 적이 있죠. 연준의 목표는 두가지입니다. 성장과 물가를 바라보죠. 그런데요,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금융 안정이죠. 금융 시스템에 불안이 생기게 되면 이 때는 무조건 뛰어나가줘야 합니다. 마치 영국 국채 시장이 무너졌을 때 금리 인상의 한복판에서 양적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영란은행처럼요… 극단적으로 연준의 피벗을 원한다면… 성장을 담보로 피벗을 요구해도 움직이지 않는 연준을 자극하려면 금융 시스템 안정을 담보로 피벗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스케일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GDP성장률이 낮아져요. 소비가 둔화되어요.. 라는 얘기보다는… 뭐 하나 부러져요.. 이래도 금리 올리실래요.. 라고 물어보는 게 보다 자극적이지 않을까요. 마켓을 보면서 뭐랄까.. 모든 게 기승전 피벗으로 맞춰져 있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한 나라”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먼 훗날에 이런 시기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Buy the Dip의 논리 중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PBR 0.8배가 바닥이다.. 라는 논리죠. 0.8배가 되면 어김없이 주가가 반등했던 과거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 금융 위기나 코로나 사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 정도 레벨에서 주가가 반등하곤 했죠. 그럼 PBR 0.8배면 주가는 오른다… 라는 명제를 만들어도 될까요. 그게 아니라.. PBR 0.8배가 될 정도로 주가가 하락하면 중앙은행을 자극하게 되니.. 이 때부터는 통화 정책의 방향이 바뀌게 되고 유동성 공급을 늘려주면서 주가를 밀어올린다라고 해석하는 게 맞을까요. 주가가 하락해서 오른다라는 논리보다는 주가가 하락하니 이로 인한 실물 경기 침체를 우려해서 중앙은행의 부양책이 나오면서 주가가 오른다가… 맞는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PBR이 0.8배라서 오르는 게 아니라 그 정도 레벨까지 시장이 악화되면 중앙은행이 움직여왔기 때문에 바닥을 형성했다라는 게 맞는 얘기가 아닌가 싶네요.
이런 관점에서 지금을 보는 겁니다. 무언가 조금 더 실물 경기의 위기가 찾아오면 연준이 피벗 전환을 할 것이고.. 이게 주가를 밀어올릴거야.. 그리고 실물 경기의 위기가 크면 클수록 피벗의 크기는 클 수 있어.. 라는 논리까지 펼쳐질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 40년 동안의 패러다임과는 다소 금융 환경이 바뀌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40년 만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이 깨어난 것이죠. 인플레이션을 물가가 오른다는 얘기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는 얘기도 됩니다.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한다는 얘기도 되지만 뒤집어서는 화폐 가치가 상승한다는 얘기가 되죠. 디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할 때는요, 화폐 가치가 상승한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화폐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쌓여있을 때는 돈 풀기에 주저함이 없어도 되겠죠.
(그래도 너무 많이 풀게 되었을 때 생겼던 문제가 바로 코로나 당시의 5조 달러 수준으로 나왔던 미국의 재정 지출일 겁니다.)
2015년 9월~ 2016년 상반기로 가보죠. 정말 생생했던 기억입니다. 2015년 9월 FOMC의 화두는 미국이 과연 첫 금리를 인상하느냐 마느냐였죠. 원래는 15년 3월에 인상한다고 했다가 조금만 더 두고보자… 하면서 미루었구요, 그 다음 15년 6월에 인상할 듯 하다가 한 차례 더 미루었죠. 그 다음이 15년 9월이었습니다. 인상과 동결 의견이 팽팽했는데요… 인상 의견이 더 많았죠. (개인적으로는 동결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을 반영하면서 주식 시장 분위기도 제대로 메롱이었는데요… 다행스럽게 동결이 되면서 15년 10월의 짧은 랠리가 나와줬었죠. 그렇지만 그 랠리도 금새 힘을 잃었습니다. 15년 12월 FOMC에서의 금리 인상은 거의 기정사실화되었기 때문이죠. 다만 당시에는 12월에 금리를 인상하느냐 마느냐보다는 점도표에서 어느 정도로 예측을 하느냐였습니다. 그리고 15년 12월 FOMC에서 06년 6월 이후 거의 9년 만에 첫 25bp인상이 단행된 이후 점도표가 발표되죠. 점도표에서는 16년에 4차례 추가 인상, 17년에 4차례 인상, 18년에 3차례 추가 인상을 예상했구요.. 18년 말에는 3%를 넘는 금리를 만들어낼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16년 1월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이 요동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장의 불안은 연준이 한 발 물러서면서 끝나게 되죠. 연내 4회 인상은 무신… 16년 12월 한차례 금리 인상에 그치고 말았죠. 그리고 당시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18년 12월 있었던 강한 시장의 발작과 함께 지금의 연준 의장인 파월이 백기 투항을 하면서 19년 7월에 보험적 금리 인하, 19년 9월의 유사 양적완화, 그리고 20년 3월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무제한 양적완화와 제로 금리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네. 15~16년 당시에는요, 연준이 저 정도로 무기력하게 밀려나가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못했죠. 그 중에서도 조금 빠른 이른 바 얼리 어답터들은 연준이 디플레이션을 두려워한 나머지 쫄보가 될 수 밖에 없음을 감지하고 투자에 나섰던 겁니다. 그리고 19년 보험적 금리 인하와 20년 무제한 양적완화를 거치면서 이제 모두가 알게 된 것이죠. 연준은 쫄보라고… Buy the Dip이 하나의 공식이 되는 순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요, 코로나 당시 풀었던 거대한 경기 부양책이 강력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그로 인해 1년 이상 홍역을 치루어오고 있는 지금… 당시처럼 경기 부양책을 다시 쓴다면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될까요? 미쳤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4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못 보았고, 인플레이션이 멸종했다고 생각한다면,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디플레를 경계하면서 상당한 부양책을 써도 큰 마찰이 없겠죠. 그런데 인플레이션으로 홍역을 치루었다면.. 그리고 화폐가치 하락의 가능성이 높다면 이럴 때 화폐의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경기 부양을 다시금 과감하게 쓸 수 없을 겁니다.
앞의 말씀과 연결해보죠. 침체가 오면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라 침체가 왔을 때 그런 침체를 넘을 정도의 강한 부양책이 나왔기에 자산 가격이 올랐던 겁니다. 그런데 침체가 오더라도 인플레이션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강한 경기 부양을 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부양책을 쓸 수 없다면 경기 침체의 고통이 오롯이 시장에 투영되게 됩니다. 과거와 패턴이 달라질 수 있는 거죠.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침체가 오면 인플레이션이 사그러들 것이고, 그럼 얼마든 돈을 풀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그겁니다. 그냥 멀쩡한 사람과 위궤양으로 인해 수술도 하고 병원 신세를 크게 진 사람이 있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잠깐 아프고 난 다음에는 예전처럼 식사를 해도 큰 두려움이 없겠죠. 그런데 병원 신세를 진 사람이.. 지병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예전처럼 마음껏 과식을 할 수 있을까요. 재발의 개연성이 워낙 높기 때문에 병원에서 퇴원할 때 상당히 많은 경고를 받을 겁니다. 식단 관리하셔라.. 이런 저런 음식 드시지 마셔라부터 시작해서요. 재발의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피벗은 가능할 수 있지만 과거와 같이 무제한으로 돈 풀기에 나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이 클 때 연준은 선제적인 돈 풀기를 해왔죠. 2017년에는 대칭적 물가 목표를 선언하면서, 그리고 2020년에는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하면서 제발 인플레이션이 올라와주기를 하늘에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플레가 제발 올라오라고 해도 쉽게 올라오지 않으니… 되려 조금만 힘들면 디플레로 가라앉으니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럼 조금만 안좋아져도 디플레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통화 완화로 대응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이 당시와 같은 환경일까 생각해보는 거죠.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강한 상태로 2년 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커지고 있죠. 이럴 때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선제적인 통화 완화에 돌입하는 것이 맞을까요. 40년 만의 인플레이션과 53년 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 앞에서 선제적 통화 완화를 기대하는 것이 디플레의 늪에서 4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볼 수 없었던 환경에서 선제적인 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과거 그 달콤했던 패턴을 기억한다면, 선제적인 연준의 돈 풀기를 보아왔다면 당연히 그런 기대를 모락 모락 피워올릴 수 있겠죠. 15~16년에 사람들은 연준이 그렇게 쉽게 금리 인상을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했고… 19년의 사이클을 넘기고서야 연준이 쫄보임을 알게 되면서 거대한 유동성 상승장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그 패턴이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40년만의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연준이 당시처럼 디플레이션만을 걱정할 것인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긴 에세이 속에서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경기 침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연준이 과거처럼 디플레를 걱정하며 선제적 금리 인하를 할 것이라는 점.. 이 두가지죠. 이게 연준과 시장의 괴리가 시작된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말 에세이 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