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에세이 22.09.14

 
전일 CPI 쇼크.. CPI 트레이딩으로 4~5일간 강하게 말아올렸던 금융 시장에 다시 한 번 충격을 주었죠.
헤드라인 기준으로 8.1%를 예상했는데요.. 이게 8.3%로 나왔습니다. 물론 지난 달 8.5%에 비해서 소폭 내려온 것은 맞지만 예상치보다는 실망스러웠죠.
지난 7월 FOMC에서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헤드라인보다는 근원 물가를 더 중요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그 근원 CPI는 전년 대비 6.3%를 기록했죠. 지난 달 5.9%보다 높아진 겁니다.
 
네.. 에너지 가격이 내려가도 다른 영역에서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월세와 같이 잘 떨어지지 않는 섹터들의 물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게 올라오면 유가 등이 하락하더라도 물가를 쉽게 짓누르지 못하죠. 헤드라인 기준 CPI의 고점 확인은 맞을지 몰라도 그 내려오는 속도는 꽤 늦을 수 있습니다.
 
기침이 나았는가를 판단할 때에는 기침이 나오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하죠. 기침을 미친 듯이 하다가 살짝 증세가 나아졌다고 해서.. 기침을 살짝 덜한다고 해서 나았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죠. 연 2%를 목표로 하는데.. 연 2%의 목표치 대비 하늘로 솟아있는 물가를 끌어내리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겁니다. 현재 헤드라인이 8.3%인데요… 9.1%보다는 기침을 살짝 덜하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2%까지 내리려면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어보입니다.
 
그 레벨도 높아보이는데 보다 두려운 것은 인플레이션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팍팍 내려와줘야 하는데… 말씀드렸던 월세의 상승 등은 그런 인플레의 뚜렷한 하락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럼 2%까지 되돌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죠. 얼마나 걸리게 될까요? 6개월… 아니면 1년?? 1년 이상도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1년 정도 후까지 잡아내리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라는 생각도 드실 수 있는데요..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지금 인플레이션이 이슈화된 것이 지난 해 3월부터였구요… 그럼 1년 6개월 째 연 2%를 넘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네.. 1년 반 동안 기침을 해왔던 것이죠. 물론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나오는 기침이라면서 거의 6~7개월을 일시적 기침이라며 특별한 대응을 하지 못했죠. 그러면서 앞의 6~7개월을 어어어.. 하면서 보내버렸던 겁니다. 그리고 이후 1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잡고 좌충우돌을 하고 있죠. 지난 해 11월부터 테이퍼링이 시작되었고 3월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되었는데… 1년 여 기간 동안 인플레 잡기 위한 화력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음에도 인플레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어느 새 1년 6개월이 지난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인플레 잡는 시간이.. 연 2%로 되돌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잠시 생각해보는 겁니다.
만약 1년 정도 걸린다고 하면 연 2%가 넘는 물가 상승을… 기침하는 것을… 현재까지 1.5년에 1년을 추가하는 셈이니 2.5년간 기침을 하는 게 아닐까요. 2년 반 동안 기침을 하면 폐에 당연히 무리를 주게 되지 않을까요? 이건 고질병을 만들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고질병이 되면… 나중에 정말 치료하기 어려워질 수 있죠. 인플레이션이 그냥 기본 옵션으로 깔려있다고 보면 됩니다. 치료하더라도 당뇨병처럼 금방 조금만 무리하면 튀어올라버리는 문제는 만들어내게 되겠죠.
인플레이션은 물가의 상승을 말합니다. 물가의 상승은 뒤집어말하면 화폐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죠. 인플레 기대가 고착화되었다는 것은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가 팽배했음을 말하는 겁니다. 화폐 가치 하락에 대한 기대가 살아있는데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 10년간 했던 것처럼 양적완화로 돈을 들이붓는다??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데 화폐 공급을 늘린다?? 그럼 화폐 가치는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주저앉게 되지 않을까요. 화폐 가치의 급락은 물가의 빠른 상승을 의미합니다. 네.. 인플레이션을 더욱 키우는 꼴이 되겠죠. 기대인플레가 살아나서 고착화되면.. 나중에 경기 부양을 할 수도 없습니다. 부양하려고 금리 조금 낮추고 유동성 조금만 늘리면 바로 인플레가 탁 튀어올라오게 될 테니까요..
 
적어도 이번 CPI 발표는 이번 인플레이션을 연 2%까지 끌어내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켜주었죠. 그리고 시장으로 하여금 연준이 생각보다 강하게 움직이겠구나.. 라는 싸한 느낌을 선사해주었을 겁니다. 4~5일의 짧은 랠리가 시작되기 직전 연준 위원들 4명이 나와서 기준 금리를 4%수준까지 인상할 것이며 내년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것은 설레발임을 언급한 바 있죠. 그 얘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금융 시장은 강한 상승세를 시현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예상하는 연준 금리 인상 확률에는 여전히 내년 5월이면 금리는 내려올 것이다.. 라는 전망을 담고 있었죠.
 
시장이 연준을 믿는다… 연준이 콘트롤할 수 있다 없다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연준의 약발이 먹히지 않아서 인플레 제어에 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면….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고.. 그게 고질병이 되어서 나중에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80년대 볼커의 처방처럼요… 그리고 우리는 이미 1년 6개월을 인플레이션과 싸워왔다는 것을… 기침을 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 합니다.
 
몇 년 몇 개월이 지나야 고질병이 된다.. 와 같은 공식은 없지만… 적어도 1년 반이 지난 지금… 시간이 더 흘러갈수록 고질병이 될 확률이 높아지게 되겠죠. 연준이 보다 강하게 나서게 될 것이라는 시장의 컨센이 이번 CPI를 통해서 어느 정도 형성될 듯 합니다. 이게 약한 수준의 경기 침체를 만들어내는지 지켜보시죠. 지난 잭슨홀 연설에서 파월은 일정 수준 성장을 포기하더라도 물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죠. 그리고 정확히 같은 문구를 얼마 전 옐런 재무장관도 반복해주었습니다. 인플레 잡으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갯벌에 게들이 이제.. 사람이 떠날 시간이 된 줄 알고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가 다시금 깜짝 놀라서 숨는 모습… 오늘 새벽 CPI 발표 이후에 본 듯 합니다. 인플레의 고착화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에세이 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