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에세이 23.02.05

주말 날씨가 꽤 따뜻합니다. 영상 7도까지 올라가서인지 외투를 입고 걸으니까 살짝 덥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2월 초순입니다. 이제 1개월 정도만 지나면 대충 동장군은 물러나고 꽃피는 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법 추웠던 올해 1월의 날씨와는 달리 자산 시장은 화려한 1월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뉴욕 증시는 제대로 상승세를 보여주었고, 달러는 약세를 보이면서 달러원 환율을 1230원 밑으로 밀어버렸죠. 채권 금리도 큰 폭 하락했고, 연준의 피벗 기대를 머금고 국제 금 가격 역시 하늘 높이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시장의 예상보다 덜 매파적이었던 FOMC를 바라보면서 시장은 더욱 더 크게 환호했죠. 그러다가 지난 토요일 새벽 고용 지표를 만나게 됩니다.
 
저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50만개가 넘는 일자리… 외국계 IB나 연구소의 예상치 상단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고용이 창출되었구요, 실업률도 3.4%까지 낮아지면서 53년만의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임금 상승률은 낮다고는 하지만 12월의 임금 상승률이 상향 조정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버렸죠. 여전히 뜨거운 노동 시장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반세기 최저 실업률에… 지금 뜨거워지고 있고... 또 언제든 뜨거워질 준비가 되어있는 자산 시장, 그리고 2% 물가 목표를 크게 상회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과연 연준이 연내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그런 생각이죠. 시장 참여자들은 무조건 단행하는 게 맞다고… 연내 2번은 인하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 많은 듯 하구요… 연준은 그런 시장에 딸려가지 않고 꿋꿋이 연내 인하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버티고 있는 형국입니다.
 
시장은 2019년의 연준을 보면서 금리 인하 기대를 더욱 키우고 있죠. 2013년~19년의 연준은 정말 비둘기 그 자체였죠. 저 역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요..… 그 근저에는 비둘기 연준의 스탠스에 워낙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죠. 연준은 항상 인플레이션이 올라오는 것을 다 확인하고서 움직이려는 모습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인플레가 주저앉을 것 같으면.. 디플레 압력이 높아질 것 같으면 선제적으로 나서서 돈을 풀어주곤 했죠. 13년 9월에 시작될 것이라던 테이퍼링은 14년 1월로 늦춰졌구요, 15년 상반기에 시작될 것이라던 첫 금리 인상은 15년 12월에야 가능했습니다. 16년 연내 4차례 인상될 것이라는 금리는 16년 12월에 고작 한차례 인상하는데 그치고 말았죠.
 
18년 12월에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아직 더 많은 금리 인상이 남아있다고 호언장담했던 파월 의장은 불과 15일 여가 지난 19년 초에 얼굴이 하얗게 뜬 모습으로 등장해서 금리 인상에 인내심을 가지겠다는, 금리 인상을 멈추겠다는 얘기를 했죠. 그리고 불과 6개월 후인 19년 6월 금리 인하를 예고하면서 금리 인하 사이클로 돌입했죠. 그리고 코로나가 터지자 더욱 걱정스러운 눈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코멘트를 하죠. 연준이 이 정도 비둘기입니다. 이런 호구가 5%이상의 금리를 이어갈 수 있다…?? 상상하기 어렵죠. 네.. 지난 10여년의 기간을 두고 보면 그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때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워낙 강했기에… 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디플레이션이 미국 경제를 제대로 짓누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기에 돈 풀기를 선제적으로 하면서 대응했을 때였죠. 중력이 계속해서 밑으로 작용하고 있으니.. 잠시라도 밑으로 방향을 틀어 밀려내려갈 것 같으면 위로 부스트업을 해주는 돈 풀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물가가 내려올 것 같으면 바로 선제적인 금리 인하 등으로 대응을 하곤 했는데요.. 지금은 얘기가 다르죠.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강합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해왔던 선제적 금리 인하 카드가.. 지금도 똑같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연준과 시장의 동상이몽이라는 말씀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요… 이 둘의 시각이 다른 이유는요.. 똑같은 인플레이션을 보면서도 둘이 바라보는 시계열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똑같은 위장병을 바라보는 의사와 환자의 생각이 다른 것과 비슷하죠. 홍길동이라는 환자가 너무 달고 짠 것만 먹어서 위염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보죠. 1주일 정도 병원밥을 먹고 나니 위통증이 크게 약해진 겁니다. 그래서 환자는 바로 퇴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죠. 하지만 의사는 다릅니다. 이 환자가 밖에 나가면 아직 덜 나은 상황에서 또 달고 짠 것을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그래서 일단 제대로 나은 이후에 내보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환자는 빨리 나가서 달고 짠 것을 먹을 생각에 매우 흐뭇하게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의사한테 말하죠.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괜챦으니까 이제 나가겠다라구요… 나가면 바로 달짠을 먹을 텐데.. 괜챦을까요?
 
병원에 다시 들어오면 되지 뭐가 문제냐.. 라고 하실 수 있는데요… 위장병이 고질병이 되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저 상황으로 제대로 위염을 뿌리뽑는 게 아니라 치료하다 말다 하면 병에 내성만 강해지게 되고… 오랜 기간 위염이 이어지면서 위염이 고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죠. 이게 나중에 암과 같은 중병으로 이어지게 되면 이건 정말 위험해질 수 있는 겁니다. 의사는 환자의 중장기적인 건강(경제로 따지면 성장)을 걱정하면서 1주일만 더 병원에 남자라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인플레와의 전쟁에서 너무 빠른 승리 선언을 하게 되면 이로 인해 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고 소비도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반세기 최저 실업률 상태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시장이 환호하는 정도가 상당할 겁니다. 그럼 자산 가격이 크게 뛸 수 있겠죠. 부동산 가격 역시 상승할 겁니다. 그럼 부동산 가격 하락과 모기지 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이제 막 주춤해지려고 하는 주거비 인플레이션의 추세도 바뀔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에너지 가격의 빠른 하락세가 물가를 주저앉히는 속도가 빠른 것도 맞지만 130불 수준에서 70불까지 내려온 국제 유가가… 최근에는 주춤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정로 수준의 실업률에서 임금이 빠르게 안정이 될지.. 시장이 기대하는 만큼 인플레가 빠르게 안정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은 고질병이고 뭐고 인플레 조금 나아졌으니 당장 이 고금리를 끝내고 싶은 것이구요..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장기화 가능성을 발본색원하고 가려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을 바라볼 때 중장기적인 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준과 지금의 자산 가격 상승을 바라보는 시장이 다르다는 점.. 이게 시장과 연준의 동상이몽을 만들어내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인플레이션이 시장의 기대보다 천천히 내려오게되고.. 혹은 대응을 느슨하게 하면서 다시금 재발하거나 하면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죠. 그게 연준이 걱정하는 인플레이션의 상방 위험일 겁니다. 여기서 바로 다음 질문이 나올 수 있죠.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가… 이렇게 고금리를 오랜 기간 유지하다가 자산 가격도 하락하고 실물 경제도 둔화되면서 디플레이션으로 쳐박힐 우려… 이른 바 하방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질문입니다.
 
네. 연준 역시 상방 위험과 하방 위험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둘의 위험이 동일한지.. 아니면 상방 위험을 보다 크게 보는지.. 혹은 하방 위험을 보다 크게 보는지에 따라서 연준의 스탠스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상업은행들의 자본은 크게 늘어나있는 상황입니다.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강해졌죠. 고금리를 유지해서 일정 수준 경제에 충격을 주더라도 금융 시스템의 불안으로 곧바로 이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옐런과 바이든 뿐 아니라 학계 및 시장 참여자들도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국채 시장의 불안감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얘기는 맞는데요… 그래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하는 거겠죠. 고금리 미국 국채도 사려하지 않는 이유는요.. 금리가 빠르게 더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더 오르지 않고 현 상태 금리에서 큰 변화 없이 유지된다고 하면… 미국 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는 다시금 생겨날 수 있죠. 금리 인상 속도 조절 이후 최근 미국 국채 시장이 안정을 찾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리고 코로나 당시 뿌려준 거대한 보조금으로 인해 미국 사람들의 저축은 여전히 많은 편이죠. 저축률이 최근에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쟁여둔 저축이 있구요.. 이는 소비가 빠르게 둔화되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은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고용 지표 역시 하방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상당한 완충 장치가 될 수 있죠.
 
마지막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의 자신감이 상당합니다. 낙관적 마인드를 가진 환자는 수술을 해도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고 하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있는 시장이 고금리를 만나는 것과 강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시장이 고금리를 만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요? 그러니 5% 금리를 목전에 두고도 자산 시장이 강한 반등을 만들어내었던 거겠죠. 연준 스탭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지난 12월 의사록의 핵심 내용을 다룬 기사를 인용합니다.
 
“연준 직원들은 경제가 내년 말까지 침체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4일(현지시간) 마켓워치는 간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공개한 지난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경제 전망과 관련한 연준 관련 부서의 전망을 소개하며 시장이 올해 전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중략)
 
관련 부서는 11월과 12월에 새로운 정보를 접했다며 경제 성장은 예상보다 강했으며 재정 조건도 이전 가정보다 덜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식 가치에 대한 더 높은 전망과 달러에 대한 더 낮은 전망은 중기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금리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의사록에서 관련 부서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전망에 대한 위험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경고했다. 다만, 연준은 올해 성장은 여전히 "현저하게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연합인포맥스, 23. 1. 5)
 
첫문단에서 연준 직원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죠. 침체 우려가 크다는 과거의 전망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합니다. 두번째 문단을 보면 11월, 12월의 흐름을 보니까… 가계의 재무 상태가 과거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고… 뒤이어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강한 기대, 그리고 달러가 더 약해질 것이라는 강한 기대.. 이 두가지 기대가 높은 수준의 금리로 인한 충격을 상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격 훈련을 할 때도 마지막 시간에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죠. 이상합니다. 마지막 시간이면 가장 지쳐있을 때인데요… 끝내고 싶은 거고 곧 끝날 것이니 그럼 힘을 더 내야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문단에서 연준 스탭들은 위험이 한쪽으로 치우쳐있음을 말합니다. 네.. 경기 침체로 인한 하방 위험보다는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 이어지는 상방 위험을 경계하는 거겠죠. 주말 에세이 줄입니다. 감사합니다.